211228 잡생각
어느 어린이가 "저는 어른이 되면 개와 관련된 일을 하며 살고 싶어요. 개 훈련사라거나, 개 사진과 영상을 찍는다거나, 애견용품을 만든다거나 등등이요." 라고 말한다고 상상해보자.
10년 전만 해도 주위의 모든 어른들이 "그런 직업들은 정말 거의 없기도 하고 처우도 별로야. 이상한 헛바람 들어서 엉뚱한 짓 하지 말고 학교 공부 열심히 해서 수의사가 되거라. 수의사가 되면 네가 바라는 대로 살 수 있어. 그런데 수의사 되려면 공부 잘해야 돼. 전교 몇 등 안에는 들어야지. 그러니 얼른 방에 들어가서 공부해."라고 이야기 했겠지. 또 한반도 어디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저런 구닥다리 조언(혹은 강요?)을 하고 있는 어른도 여전히 있을 것이고.
하지만, 오늘날... 강형욱, 설채현, 루퐁이네, 아리둥절, 소녀의 행성 등등.
미래 사회에 대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 않더라도, 2010년대 후반부터 일 · 직업과 관련하여 본격적인 지각변동이 이미 현실화되었고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점점 qualification이 아닌 contribution이 중요해지고 있고, 점점 노력에 대한 보상이 아닌 성과[기여]에 대한 보상으로 옮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부는 버티는 것', '학점은 노력과 성실함의 측도' 같은 억지 가치부여의 유통기한이 얼마나 남았을지, 또 '다른 수강생보다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언제까지 지상과제일지도 궁금하다.
'다른 수강생보다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지상과제인 한 양학과목 골라듣기, 이해는 뒷전이고 대충 비슷하게 끄적여 부분점수 많이 받기 식 가성비 공부, 인맥으로 족보 수집하기, 족보 사기, 밑져야 본전이니 시험지 확인 시간에 일단 부분 점수 더 받자고 어깃장 높고 보기 같은 건 contribution 관점에서는 의미가 없는데.
이렇게 공부한 사람들이 5년 뒤 10년 뒤에 또 "고점에 물렸다"며 푸념하는건 아닐까?
참고로 나는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는 말을 매우 싫어한다. 부당한 이득을 합리화할 때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는 표현을 들먹이는 경우를 많이 봐서.
"다른 애들 피씨방 가서 놀 때, 다른 애들 해외여행 다닐 때 나는 새벽 두시까지 공부했다고. 그리고 그로 인해 나는 더 높은 수능 점수, 더 높은 학점, 더 좋은 라이센스를 취득했어. 그런 내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나는 더 많은 급여를 받아야 해."
나이 이십대 중반을 넘겨서까지 저런 유치하고 졸렬한 사고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 만나면...
어우, 최대한 엮이지 않으려 한다.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키면 보상은 타인의 손실인데, 나의 갖은 노력이 타인에게 도움[기여,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노력 그 자체가 무슨 소용인가. 보상은 내가 제공한 기여의 일부여야지. 우리 사회에 지대 추구가 만연한 것의 이면에는 '노력 · 인내와 그에 대한 보상' 패러다임이 크게 자리하고 있을 게다.